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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친일파 웹툰

스타라치 2017. 10. 23. 20:34


백선엽 친일파 웹툰이 화제입니다.

백선엽은 '친일 행적'으로 구설수에 오른 인물입니다.

백선엽은 예비역 육군대장으로 실제나이 97세입니다.



백선엽을 전쟁의 영웅으로 그린 웹툰이 문제입니다.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에 기재되었습니다.

이에 시민단체가 백선엽 웹툰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백선엽 친일파 웹툰의 제목은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입니다.

현재 이 웹툰은 육사 홈페이지에 30회를 게재하였습니다.

웹툰은 2014년 6월부터 '학습광장'과 국방일보에 연재되었습니다.



이 웹툰은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 제목과 같습니다.

육사는 이 동명의 회고록과 백장군의 또 다른 회고록

'군과 나'의 내용을 기반으로 스토리를 구성했습니다.



문제의 웹툰은 백선엽 장군을 한국 전쟁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백선엽은 해방 후 미군정에 세운 군사영어학교 졸업 후 중위로 임관했습니다.

백선엽은 한국전쟁 개전 당시 1사단장으로 활약했습니다.



백선엽은 1953년 휴전 당시 대장으로 승진했습니다.

백선엽은 두차례 육군 참모총장을 지냈습니다.

백선엽은 현 합참의장을 끝으로 1960년 예편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웹툰은 백선엽의 '친일 행적'을 뺐습니다.

백선엽의 영웅적인면만 묘사한 것은 부적절한 것입니다.

백선엽의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백선엽은 일제강정기 때 항일인사 토벌에 나섰습니다.

만주군 간도특설대 장교로 2년 반 동안 복무한 전력이 있습니다.

이에 2009년 백선엽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됩니다.



백선엽은 민족문제연구소에서도 친일파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을 통해 백선엽의 이름이 올라가 있습니다.

백선엽은 이명박 정부 때 한국군 최초 명예원수(5성장군)

으로 추대하는 방안이 추진되었으나, 군 원로들의

친일파를 한국군 최초의 명예원수로 추대해서는 안된다는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기도 하였습니다.



백선엽은 자발적 친일의 전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선엽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도 각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박정희는 남로당 군사책 혐의로 사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949년 정보국장이던 백선엽의 결정에 따라

극적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또한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할 때도 백선엽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에 백선엽은 박정희 정권에서 승승장구합니다.

박정희 정권 붕괴 이후에도 한국 전쟁 참전한 공로가

인정되어 사회원로로 각종 행상에 초빙, 초청됩니다.



백선엽은 한국종합화학공업 사장, 한국후찌쯔 사 고문,

비료공협 회장, 한국화학연구소 이사장, 국제상공회의소

국내위원장, 국토통일원 상임고문 등 요직을 거칩니다.



백선엽은 창씨개명도 하였다고 합니다.

윤봉길 의사가 죽인 시라카와 요시노리로 창씨개명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독립군을 토벌하였다고 하네요.



시라카와 요시노리는 일본제국 육군의 군인입니다.

상항이 파견군 사령관, 관동군 사령관, 육군 대신,

군사 참의관 등 일본의 여러 요직을 역임했습니다.



1932년 4월 훙커우 공원에서 벌어진 천장절 축하행사

에서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에 맞아 중상을 입었고,

1932년 5월 폭탄으로 인한 중상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시리카와 요시노리는 무려 12번의 수술을 받았지만

상태가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사망하게 됩니다.

제3함대 사령장관 노무라 기치사부로는 외눈이 되었습니다.



백선엽의 가족 중 백선엽만큼이나 유명한 인물이

그의 남동생인 백인엽입니다. 백인엽은 일본 메이지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일본육군항공학교에 입교하여,

일본제국 육군 항공소위로 종전을 맞았습니다.



백선엽과 백인엽은 자신들의 이름을 딴 선인재단,

선인학원을 운영하였습니다. 백인엽은 인천 선인학원

이사장을 지낸 예비역 중장으로 90세의 나이로

별세하였습니다.



하지만 선인학원은 비리 사학재단으로 지목되었습니다.

많은 비리로 물의를 일으킨 끝에 1994년 공립화되었습니다.

백인엽은 이사장으로 재직 당시 1981년 공금횡령 혐의

등으로 법원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또한 백선엽은 kbs 1 tv에서 백선엽 다큐멘터리 1부

'전쟁이 군인을 만든다-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라',

2부 '군인의 조건-싸우면서 배운다'가 방송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백선엽 다큐멘터리 방송을 놓고 전쟁영웅과

친일 전력여 대한 갑론을박이 많았습니다. 백선엽의 군인

으로서의 시작인 간도특설대 장교였기 때문입니다.



백선엽은 이 점에 대해 사죄조차 하지 않는 인물이라며,

이런 인물을 미화해 방송할 수 있냐는 kbs 노조와

시민단체 측이 충돌해 왔습니다.



백선엽의 다큐멘터리의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은 독립군

을 토벌하고 욕보이고 시체마저 훼손해 버렸다는 끔찍한

간도특설대 이야기는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요즘 kbs를 김비서의 영문표기라고 부릅니다.

공정과 공공을 최우선 가치로 하고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국민의 방송이어야 할 공영방송이 누구의 비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백선엽은 32살에 장군으로 전쟁을 치른 뒤 예편해

인천에서 중학교와 상업고교를 인수해 백선엽 백인엽

두 장군 형제의 이름 한자씩을 딴 '선인학원'을

설립하게 됩니다.



이후 설립하는 사립학교에는 어머니 또는 아들의

이름도 들어갑니다. 이후 박정희 군사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선인학원은 온갖 비리를 이용해 엄청난

규모로 커집니다.



학교 부근 주민재산 침해, 중국인 공동묘지 침탈,

맘에 안 드는 교사는 그자리에서 해고, 교사들은

예비군복 입고 교문 앞에서 보초근무, 말도 안 되는

학생 체벌, 부정 입학, 부정 편입학, 졸업장 판매,

기부금 입학 등 셀 수 없다고 합니다.



이에 백선엽, 백인엽 형제를 한국 사학비리의

원조이자 학교에 일본 제국주의식 군사문화를

뿌리 내린 장본인으로 뽑고 있습니다.



한국이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학생과, 교사,

교수들이 거의 목숨을 걸다시피 투쟁해 재단비리가

교육부 감사로 밝혀졌고, 동생 백인엽은 구속기소

되었다고 합니다.



선인학원의 비리가 오죽 심했으면 학교 비리와

학내 사태에 대해 인천시민들이 나서 학생과

교수 편에서 투쟁을 벌였다고 합니다.



결국 백선엽의 일생을 보면 친일의 전력 이후

친일세력이 백선엽을 구심점으로 수구세력화

하였고, 독재권력의 비호로 학원재벌이 되면서

지방토호 비리의 뿌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백선엽의 친일파 웹툰 논란과 함께 그와 그의

가족들에 대한 내용들이 대중들의 관심을

사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또한 백선엽 장군이 

전쟁 영웅인가, 친일파 인가에

대한 논란 또한 더욱 거세질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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